형법상 위법한 행위라도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처벌되지 않습니다. 이를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정당방위, 긴급피난, 피해자의 승낙 등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당방위의 기준과 실제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위법성 조각사유 전반을 알기 쉽게 정리합니다.
처벌받지 않는 위법 행위? 법이 허용하는 예외의 조건
일반적으로 형법은 위법한 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합니다. 하지만 모든 위법 행위가 반드시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 행위가 법적으로는 위법하더라도 그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정당방위입니다. 누군가 나를 때리려 할 때, 그 사람을 밀치거나 막아서면서 상해를 입혔다면 형식적으로는 폭행죄나 상해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행위는 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회 통념상 용인되며, 형법도 이를 인정합니다. 이처럼 행위는 위법해도, 상황에 따라 그 위법성을 조각(削却)시켜 형사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조항들이 존재합니다. 형법 제20조부터 제24조까지가 바로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규정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면 '위법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판단되어 범죄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않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정당방위(제21조), 긴급피난(제22조), 자구행위(제23조), 피해자의 승낙(제24조), 그리고 법령에 의한 행위나 정당한 업무(제20조)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반 시민이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위법성 조각사유 중 ‘정당방위’를 중심으로, 그 인정 기준과 실제 판례, 그리고 적용 시 유의사항까지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당방위와 그 한계, 실제로 인정되려면?
정당방위는 형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으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일 때 위법하지 않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현재의’ 침해일 것. 둘째, ‘부당한’ 침해일 것. 셋째, ‘상당한 방어 수단’을 사용할 것. ‘현재성’은 이미 끝난 침해나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협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이미 공격을 멈췄거나 도망간 상황에서 가해자를 때리는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보복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부당성’은 침해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경우를 말하며, 예를 들어 경찰의 정당한 체포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한다면 이는 정당방위가 아닌 공무집행방해죄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상당성’은 방어수단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가벼운 폭행에 대해 흉기로 반격했다면 과잉방위로 간주될 수 있으며, 형법 제21조 제2항은 “방위행위가 상당성을 잃은 때에는 벌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단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서울중앙지법은 한 여성이 새벽 시간 택시기사가 성추행을 시도하자, 휴대폰으로 기사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한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불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위협적 상황이며, 여성의 행위가 방어 외에 별도 보복의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020년 대구지법 사건에서는 술자리 시비 중 상대방이 먼저 밀쳤다는 이유로 그를 주먹으로 반복 폭행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 법원은 “초기의 방어는 정당했으나 반복적 폭행은 정당방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해 일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당방위 외에도 위법성 조각사유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강도행위를 막기 위해 그 사람의 오토바이를 파손했다면 이는 긴급피난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도망가는 절도범을 막기 위해 그의 팔을 붙잡고 넘어뜨린다면 이는 자구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취제를 사용하거나, 경찰이 수갑을 채우는 행위는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간주되어 위법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사유는 ‘상황에 따라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불가피한 행위’에 한해 인정되며, 법원은 개별 사안마다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정당방위는 정당해야 인정된다, 위법성 조각은 예외이지 일반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방위를 주장하곤 하지만, 실제로 법원이 이를 인정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 이유는 방어의 목적, 수단의 균형, 상황의 긴급성이 종합적으로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어가 과도하거나, 이미 끝난 침해에 대해 반격이 이뤄졌다면 정당방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형법은 일반적으로 위법한 행위에 대해 처벌을 규정하지만, 예외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행위, 긴급 상황에서의 판단, 그리고 공공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를 보호하기 위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 규정일 뿐이며, 남용될 경우 오히려 새로운 범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민 입장에서 위법성 조각사유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거나, 타인을 보호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정당방위를 주장하려면, 침해의 실제 존재, 대응의 적절성, 피해 상황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와 설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정당방위와 같은 위법성 조각사유는 ‘무조건적인 면책 사유’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행해진 행위에만 주어지는 제한된 보호장치입니다. 법이 허용하는 방위는 단지 ‘맞서 싸우는 행위’가 아닌, 법과 사회가 함께 인정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