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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vs 인식 있는 과실, 형법 판례로 보는 기준

by record5739 2025. 6. 18.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은 형법상 유죄 성립을 가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무에서는 판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개념의 정의와 차이를 구체적으로 비교하고, 대표적인 판례를 통해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알아봅니다.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별, 판례 기준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별, 판례 기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형사법에서 고의와 과실의 구별은 단순한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무적으로도 피고인의 형사책임 여부, 나아가 사건의 유죄 또는 무죄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은 상황에 따라 서로 매우 유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원, 피의자 모두에게 판단의 어려움을 주는 개념입니다. 고의란 특정 행위로 인한 결과 발생을 인식하고 의욕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며, 과실은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결과를 초래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미필적 고의란,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수용하거나 용인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고, 인식 있는 과실은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발생한 경우를 뜻합니다. 이 두 개념은 피의자의 주관적 심리 상태에 따라 구별되며, 결과적으로 형사처벌 수위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일반적으로 고의범으로 판단되어 중한 형이 선고되며, 인식 있는 과실은 과실범으로 경한 처벌이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두 개념을 구별할까요? 피고인의 진술 외에 어떤 정황이나 행동을 통해 미필적 고의인지, 인식 있는 과실인지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기본 개념을 정리하고, 주요 판례와 함께 실제 판단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개념 비교와 판례를 통한 실제 적용 분석

먼저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미필적 고의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설마 그렇게 되겠어’, ‘되든 말든’이라는 식으로 결과를 수용하거나 용인한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술에 취한 채 차량을 운전하면서도 ‘혹시 사고가 날 수도 있겠지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반면 인식 있는 과실은 결과 발생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겠다’고 판단하여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결과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예컨대 위험한 작업 환경을 인식했지만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절차를 지킨 상태에서 사고가 난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08도1001 판례는 미필적 고의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피고인은 술을 마신 후 음주 운전을 하던 중 보행자를 충격해 사망하게 했는데, 법원은 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운전을 강행한 점에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고, 단순 교통과실이 아닌 살인죄로 판단했습니다. 반면 대법원 2011도3425 판결에서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현장 책임자가 안전 점검을 했으며, 사고 위험성을 인식하고 사전 경고를 한 사실이 인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인식 있는 과실로 판단하고 과실치사죄를 적용하였습니다. 또한 2020년 서울중앙지법 판례에서는 고층 아파트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아래를 지나가던 보행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창문 틈에 물건을 두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법원은 피고인의 말뿐만 아니라 사건 전후 정황, 사고 방지를 위한 노력 여부, 유사 사례 경험 여부, 객관적 위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을 내립니다. 피고인의 심리 상태는 외부에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행동 전반이 매우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모호한 경계 속에서도 중요한 기준들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은 단지 이론적인 구분이 아니라, 법률 실무에서 형량과 유죄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두 개념 모두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에 대한 태도와 행동의 차이가 명확한 경계를 나눕니다. 특히 고의의 입증은 과실에 비해 훨씬 무거운 책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고의성을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사고를 피하기 위한 주의 노력, 기존의 경고 여부, 반복된 행동 유무 등이 핵심 증거가 됩니다. 반대로 피고인 측에서는 자신이 충분히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 됩니다. 결국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은 결과가 발생하기 전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법적 책임의 무게를 고려한다면,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그 전에 내가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가 중요해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방 가능한 위험은 최대한 회피하고, 설사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과실범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성을 인식하고도 무시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고의범의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이 드러난 행동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 합니다. 그 경계는 좁고 모호하지만, 우리가 법 앞에서 지켜야 할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